공간의 향기 | 건축가의 바람

김환기, 김향안, 이상, 랭보, 유동룡의 공통점은?

유동룡미술관
@itamijunmuseum.com

 


 

혹시, 지난 뉴스레터를 읽고 김환기 미술관 다녀온 사람 있을까? 사실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어.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지만 현실적 이유로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 곳이 참 많지. 아마 앞으로 소개할 공간들 대부분이 그럴지도 모르겠어. “만약 내가 그곳에 간다면?”이란 기대와 상상이 나와 센티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거 같아. 오늘은 지난 편지보다 조금은 더 긴 다리를 지어보려 해.

우리 센티가 김환기 미술관에 다녀왔다면, 김환기 작가 뿐 아니라 그의 아내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을 거라 생각해. 김환기 작가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작품을 모으고 전시하고, 나아가 국내 최초로 사비로 만들어진 김환기 미술관을 설립하는 일까지 모두 그의 아내 김향안 여사가 기획하고 실행했기 때문이지.

 

환기미술관 서문
@whankimuseum.org

김향안

김향안은 남편의 그림을 모으고 전시하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그녀가 남편의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회고하기도 하고, 또 그 기억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 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김환기 작가는 그의 일기장에 아내가 없었다면 작품 뿐 아니라 일상생활조차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거라고 적어놓기도 했어. 그만큼 김향안은 김환기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거지.

김환기의 작품 세계를 그가 머물렀던 공간에 따라 동경·서울 시대(1933-1955), 파리·서울 시대(1956-1962), 뉴욕시대(1963-1974)로 나뉜다고 했었잖아. 김환기가 파리와 뉴욕에서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사람 역시 바로 김향안이었거든. 그녀는 김환기보다 먼저 프랑스로 출국을 했어. 그곳의 대학에서 불어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파리 화단과 먼저 교류를 하면서, 김환기가 파리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지. 뉴욕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해. 그녀는 심지어 김환기가 그림에 몰두할 수 있도록 그곳에서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였으니깐.

사실 김향안은 남편의 내조만 했던 것은 아니야. 그녀는 그곳에서 직접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 내려가면서 본인 역시 작품 활동을 했어. 1950년대. 어떻게 그녀는 파리와 뉴욕의 화단과 교류할 수 있었던 그런 감각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녀가 김환기를 만나기 전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아?

 


 

이상

맞아. 나는 지금 그녀가 김환기를 만나기 전에 연인이었던 시인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해. 나는 한 사람의 정체성은 타인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변해간다고 생각하거든. 남편 김환기와 함께 낯선 땅 파리와 뉴욕으로 떠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거든. 그 결심을 이끌었던 그녀의 지난 경험들이 난 자연스레 관심이 가더라고. 물론 몇몇 사실들만으로 짜깁기하듯 편집된 서사가 그녀의 인생을 모두 대변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서사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거라고 믿어. 우리가 우리의 서사를 스스로 이어가는 데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의 상징이 되어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 마련이니깐.

김향안과 이상의 만남을 살펴볼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어. 바로 화가 구본웅이야. 구본웅은 이상의 절친이자 김향안의 조카이기도 해. 김향안에게는 변동숙이라는 이복 언니가 있었어. 김향안의 원래 이름은 변동림이었지. 김환기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언니와의 인연을 끊기로 결심하면서 김향안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게 된 거지.

변동숙은 구본웅의 친모는 아니었어. 구본웅의 친모는 그가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거든. 그 이후 구본웅의 친부가 변동숙과 재혼을 하게 되면서, 김향안에게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조카 구본웅이 생기게 된 거지.

구본웅은 3살 때 땅에 떨어지면서 척추를 다치면서 등이 바르지 못하고 굽게 되었어. 학창 시절에 곱사등이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나 봐.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를 중간중간 쉬었기 때문에 4살이나 어린 친구들과 같은 학년에서 수학을 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때 알게 된 친구가 바로 이상이야. 아마도 둘은 서로의 예술적 기질을 알아본 거 아니었을까?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야. 그가 이상이라는 필명을 쓰게 된 것도 구본웅의 영향이었다는 얘기가 있어. 구본웅이 선물해 준 화구 상자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거지. 이상(李箱)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얏나무 상자거든.

이상의 초상화를 본 적 있어? 바로 그 초상화를 그려준 사람이 구본웅이야. 이상은 자기가 개업한 카페에도 자신의 그림과 함께 구본웅의 그림을 걸어두었다고 해. 그만큼 둘은 둘도 없는 친구였던 거지. 그리고 구본웅은 김향안에게 이상을 소개하게 되지.

 

친구의 초상
@mmca.go.kr

 

사실 이상은 김향안을 만났을 때 연이은 사업의 실패로 매우 가난한 상황이었어. 더욱이 폐병으로 인하여 건강까지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어. 이상과 결혼하려는 그녀를 당연히 그녀의 집에서는 반대했겠지. 하지만 김향안은 집안의 반대를 뿌리치고 결혼을 결심해. 이상은 그런 김향안을 너무도 사랑하였기에 오붓한 가정을 만들고 지키고 싶어 했어.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 이상의 시 <가정>이 바로 그러한 배경에서 쓰인 시라는 해석이 있는 이유야.

 

이상 [가정]

 

이상은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김향안과 살림을 차린 후 넉 달 만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 낯선 곳에서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찾으려 한 거지. 하지만 도쿄에서 불심검문에 걸리게 되고 경찰서에 구금되게 되었지. 결국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1937년 향년 27세의 나이로 이국 땅 일본에서 숨을 거두게 돼. 김향안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이상의 유해를 수습하여 서울로 돌아오지. 그리고 그의 영결식까지 그녀가 직접 맡아서 하게 돼. 그때 그녀의 나이가 겨우 22세였어. 그렇게 아픔의 세월을 이겨내고, 7년 뒤 김환기를 만나게 된 거였지.

 

아더 랭보

천재 시인. 이상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지. 천재 시인하면 또 떠오르는 사람 혹시 있어? 나는 프랑스의 시인 아더 랭보가 떠올라. 랭보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하고 특이한 시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 그 시절 파격적인 문장을 썼다는 것과 아쉽게도 젊은 시절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나는 둘이 좀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 영화 <토털 이클립스> 본 적 있어? 랭보의 역할을 맡았던 디카프리오가 이런 대사를 하지. 나는 이 대사가 이상의 수필 <날개>에 수록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문장과 오버랩이 되기도 했거든.

 

토털 이클립스 랭보 대사
@TotalEclipse

 

혹시 랭보의 별명을 들어본 적 있어? 바로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야. 랭보보다 10살이 많았던 그의 동성 애인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베를린이 지어준 별명이야. 랭보는 정말이지 그 짧은 생애 동안 팔랑대며 쏘다녔어. 그는 바람처럼 떠다니며 타자(他者)로 변신해 가는 것이 자신의 본질로 가닿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

 

랭보의 시

 

유동룡

그런데 오늘의 공간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 나오느냐고?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제 거의 다 왔어. 바로 “바람의 건축가” 유동룡을 이제 소개할 거거든. 혹시 “바람”을 주제로 꺼내기 위해 김환기, 김향안, 구본웅, 이상 그리고 랭보까지 오게 된 거냐고? 응 맞아;; 오늘은 좀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써봤어. 좀 정신없었지?

우선 유동룡 미술관에서 그의 삶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글을 아래 옮겨볼게.

 

유동룡
@itamijunmuseum.com

 

그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불렀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모두 외국인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었지.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틈날 때마다 한국을 여행했다고 해. 마치 바람처럼 그도 쏘다녔겠지. 그 과정에서 유동룡 역시 진정한 자신을 찾기 바랐던 것 같아. 한곳에 머물러 있는 고정된 자아가 아닌, 여러 곳과 연결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는 그의 딸에게도 “바람”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고 해.

 

 

이화야, 몸에 바람을 의도적으로 넣으렴. 그래야 생각이 자유로워지고, 여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면 너만의 감성을 키울 수 있지.

롱블랙 노트 <유동룡 : 이타미 준으로 불린 건축가, 그가 남긴 ‘시간의 의미’> 중에서

 

 

김환기, 김향안, 이상, 랭보, 유동룡. 모두 몸 안에 바람을 의식적으로 가득 불어넣었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그들의 마음엔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수만 개의 창문이 있었을 거 같아. 그 창문은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한 통로였기도 하였을 거야. 그리고 그 창문은 무엇보다 자신을 향해 열려있었겠지. 그들은 그렇게 바람을 통해 자신을 찾아낸 거 아닐까?

 

방문객 정현종 시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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