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소 : 안데르센 박물관 (Andersen House)
- 위치 : H.C. Andersen Haven 1, Odense 5000 Denmark
센티는 추석 연휴 잘 보냈어? 명절 하면 떠오르는 건 당연 맛난 음식과 명절 특집 TV 프로그램 아니겠어.
넷플에서도 추석에 맞추어 새 예능 프로그램을 공개했어. 그것도 요리 서바이벌 예능.
바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이야.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1위에 이름을 올렸다고 하니 반응도 매우 핫한 가봐.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 80명과 스타 셰프 ‘백수저’ 셰프 20명이 요리 대결을 펼쳐 최종 우승자를 가르는 예능이야. 이들의 요리 실력을 평가할 심사 위원은 사업가 백종원과 미쉐린 3스타 파인 다이닝 ‘모수’의 오너 셰프 안재성.
안재성 셰프의 날카로운 심사평도 요즘 화제더라.
안재성 셰프가 흑수저 셰프에게 합격도 불합격도 아닌 보류를 주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 깊었어.
보류 이유는? 생선의 소금 간이 정말 아주 아주 미세하게 부족했다는 거였어. 음식도 전체적으로 정말 맛있었고 훌륭했는데 그 미세한 간의 차이가 본인에게는 자꾸 걸려서 차마 합격을 줄 수 없다는 거였지.
보류 평가를 받은 흑수저 셰프는 그깟 소금 몇 그램이 뭐라고 그 차이 때문에 떨어뜨리는 거냐며 아쉬움을 토하면서도 미쉐린 3스타 셰프의 혀는 다르긴 다른가보다며 결국 그의 심사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감각이 매우 예민한 공주가 등장하는 안데르센의 동화 <공주와 완두콩>이 떠올랐어. 맞아 오늘의 장소로 <안데르센 박물관>을 선택한 이유기도 해.
혹시 이 동화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센티를 위해 나무 위키에 올라온 줄거리를 옮겨와 볼게.
한 왕자가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 단 진정한 공주 중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다. 왕자는 수많은 공주들을 만나보았지만, 다들 어딘가 공주답지 못한 결함이 있어서 왕자는 자기 짝이 없다고 슬퍼했다.
그러던 어느 폭풍우가 치는 밤, 왕자의 성에 한 공주가 찾아왔는데 그 몰골은 비바람에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도 공주는 자기가 진짜 공주라고 주장했으며 자기를 좀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왕자의 어머니인 왕비는 이 공주가 진짜 공주인지 알아보기 위해 공주가 묵을 방의 침대를 모두 치우고 위에 완두콩 한 알을 올려놓은 다음 그 위에 매트리스 12개, 오리털 이불 12겹을 깔고 공주를 그 위에서 자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공주에게 잘 잤냐고 묻자, 공주는 침대에 뭔가 딱딱한 게 있어서 온몸이 아파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는데 대체 침대에 뭐가 있었냐고 물었다. 왕자 가족은 이렇게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일 거라 판단하고 왕자는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그 완두콩은 박물관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왕비는 두꺼운 매트리스 밑에 깔린 콩 한 알이 배기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라면 공주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공주라면 늘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그 작은 불편함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감각이 예민할 거라 판단한 거지.
센티는 혹시 다른 사람들의 감각에는 아무 문제 없이 지나치는 것임에도 유난히 나의 감각에는 거슬려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 그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라고 들었던 적도 있을까? 근데 그 예민함, 어쩌면 내가 그만큼 관련 분야에 대해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서 생겨난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바로 이 예민함이야말로 각자의 장점이자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어. 다만 그 예민함으로 상대를 평가하기보다는 창의력의 원천으로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안재성 셰프가 예민함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선 요리를 창조 해내고, 안데르센이 새로운 동화를 창작해 내었듯이 말이야.
우리 센티도 자신만의 예민함으로 멋진 일들을 만들어 가길 바랄게.
공부란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뉴스의 BGM이었던 닛케이 평균주가가 의미가 있는 숫자가 되거나, 외국인 관광객의 대화가 들려오고, 가로수 나무가 개화를 맞이한 백일홍이 되기도 한다. 이 “해상도 업그레이드”를 즐기는 사람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