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향기 | 라일락뜨락 1956

약동하는 봄의 생기를 느끼고 기억하며...

라일락뜨락1956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벚꽃길

 

평년보다 추웠던 날씨 탓에 벚꽃 축제들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들리더니, 어느덧 서울에도 벚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어. 그래 꽃샘추위로는 막을 수 없는, 바야흐로 봄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어. 나는 봄이 되면, 이장희 시인의 위 시를 떠올리곤 해.

소위 천재들은 서로 다른 대상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유사점을 찾아내거나, 하나의 대상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다른 특징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잖아. 난 위의 시를 읽고 그런 느낌을 받았어. 고양이와 봄의 유사점을 찾아내는 시인의 천재적 감각. 봄이라는 대상에서 다양한 감각을 찾아내는 시인의 통찰력 에 감탄했거든. 위 시를 읽고 나면 어느덧 고양이와 봄이 하나가 되어 있는 느낌을 받기까지 하니깐.

 

 

고월(古月)은 가깝게 지낸 이상화, 오상순, 백기만 등의 소수 문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속물 시 했다. 1987년도에 이규동 신경정신과 박사가 이장희 시인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연구해 한국 임상 예술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박사는 이장희 시인을 심한 속물 혐오증을 가졌다고 진단했다. 이는 일제 치하에서 친일적 행동을 보인 아버지에 대한 기피 심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월(古月)의 아버지는 12남 9녀의 자녀를 둬 고월은 많은 이복형제와 자랐는데, 그 과정에서 심한 소외감을 갖게 됐으며 이는 자기방어의 일환으로 자폐적 태도로 변형됐다고 분석했다. 고월(古月)은 정신 파탄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병적 아픔을 예술 탄생의 에너지로 바꿔 발악한 것이다.

– 영대신문, 고월 이장희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생가 탐방기, 하지은 기자 (기사 원문 )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우울과 우수는 불우했던 가정환경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아. 친일파였던 그의 아버지는 이장희시인이 조선총독부에서 일을 하길 바랐어.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는 아버지와의 불화 등으로 점점 삶의 의욕을 잃어갔었다고 해. 1929년 11월 그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며칠간 방안에서 금붕어 그림만 그리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이장희 시인의 마음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겠지만, 그 배경으로 일제 식민지라는 시대상황을 빼곤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라일락뜨락 1956
라일락뜨락 1956

 

이장희가 살던 대구 집 근처에는 이상화 시인의 집도 있었어. 오늘의 공간인 <라일락뜨락 1956>이 바로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이지. 상화는 고월(이장희 시인의 호)을 많이 아꼈던 것 같아.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던 이장희 시인의 아버지를 끝내 설득해 장례를 치르고 문인들을 모아 그를 추모하는 행사까지 진행했던 이가 바로 이상화였으니깐. 이장희 시인의 유고집을 마지막까지 보관하고 있었던 이도 바로 이상화였지.

 

동시대를 살았던, 이장희 시인의 안타까운 삶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상화 시인도 어쩌면 그 시대가 너무도 밉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의 싯구처럼 “빼앗긴 들에도 언젠가 봄이 찾아올 것” 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던 것 같아. 그는 그의 방식으로 그리고 그의 믿음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하여 그의 운명에 저항해 나가지. 어쩌면 그에게 저항은 친구 이장희를 기억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었을지 몰라.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명에 맞서게 되니깐.

 

라일락뜨락 1956
라일락뜨락 1956

 

이상화 생가터가 <라일락뜨락 1956>이라는 카페가 된 까닭은 바로 그 자리에 200살 정도 되는 라일락 나무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 이 나무는 상화와 고월의 탄생부터 그들의 애환까지 모두 그 자리에서 지켜보았을 것만 같아.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울 테고. 매년 반복되는 계절에 맞서 잎과 꽃을 피우고 거두는 나무처럼 우리도 우리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대에 맞서 부단히 만들어 가야겠어. 약동하는 봄의 생기를 느끼고 기억하며…

 

벚꽃

 

나는 인생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어떤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슬픔의 경우, 보통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해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입니다. 아이나 배우자의 사망 같은 끔찍한 일을 극복하기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내 인생의 대본에 없는 일이야. 인생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안 돼. 내 아내, 아이가 살아야 했을 삶은 따로 있어. 하지만 이미 사건이 벌어진 이상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결혼이 파경에 이른 내 친구 한 명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의 대본을 가져가 찢어버린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미래가 공허해진 것이지요.

하지만 일단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합니다. 나는 이 슬픔에 압도된 순간이 바로 창조적인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시기라 생각합니다.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시기지요. 떠나간 이의 삶이 괜찮은 삶이었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 삶은 내가 바라던 것보다는 더 짧게 끝났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좋은 일들도 있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 책 <무의식은 없다>, newspeppermint ( 기사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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